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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소개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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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의 명칭유래

신라시대 팔거리현이 고려시대 팔거라 했고 달리 칠곡(七谷)으로 부르기도 했다. 조선 인조18년(1640) 가산산성이 축성되면서 팔거현이 칠곡도호부(七谷都護府)로 승격되면서 명칭이 변경되었다.
칠곡(七谷)이란 이름은 팔거현의 명산 가산이 일명 칠봉산(七峰山)으로도 불리는데, 산정(山頂)에는 나직한 7개의 봉(峰)으로 둘러싸인 평정(平頂)을 이루고 골짜기도 사방 7개로 형성하고 있다. 여기서 명칭을 따서 「七谷」이라고 했는데 그후 일곱 칠(七)자를 칠(柒)자로 바뀌어 「柒谷」으로 사용하다가 칠(柒)과 같은 자인 칠(漆)로 고쳐「漆谷」으로 다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옻나무가 많아서 옻칠(漆)자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출처 : 향토사료 제6집 칠곡마을지 (칠곡문화원 발간)

연혁

구석기시대
  • 석적면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신라시대
  • 팔거리현 또는 북치장리현, 인리현 이었다가 경덕왕(신라 35대. 재위 742~765)이 팔리로 고쳐 수창군에 소속시켰다.
고려시대
  • 고려 초에 팔거로 고치고, 현종(고려 8대. 재위 1010~1031) 때에 현재의 성주인 경산부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 1640년 인조(조선 16대. 재위 1623~1649) 18년에 이르러 가산산성을 쌓고 도호부를 두어 칠곡이라 하였는데 1895년 고종(조선 26대. 재위 1863~1907) 32년에 칠곡군이 되어 대구부에 소속되었다.
    1914년 부군면 폐합에 따라 인동군의 9개 면과, 신라 때에 대목 또는 칠촌ㆍ곤산현이었던 약목면과 병합하고 군청 소재지를 왜관으로 옮겼다.
근현대시대

1895

대한 고종 32년

06. 23.
漆谷郡으로 칭함

1914

03. 01.
인동군을 병합하여 9개면을 관할하면서 군청을 왜관에 둠
07. 15.
가산면 신은동이 선산군 장천면 상장동으로, 인동면 증동 일부가 선산군 산동면 성수동에 편입, 장천면 인선리가 가산면 심곡동에 편입

1949

08. 13.
왜관면이 왜관읍으로 승격 (1읍 8면)

1973

07. 01.
북삼면 낙계동이 선산군 구미읍에 편입

1974

11. 01.
약목면 동부출장소 설치

1978

02. 15.
인동면 일원이 구미시로 편입 (1읍 7면 1출장소)

1980

12. 01.
칠곡면이 읍으로 승격 (2읍 6면 1출장소)

1981

07. 01.
칠곡읍이 대구직할시에 편입 (1읍 6면 1출장소)

1983

02. 15.
북삼면 오태동이 구미시로 편입되고, 성주군 선남면 노석동이 약목면으로, 석적면 아곡동이 왜관읍으로, 석적면 황학동이 지천면으로 편입

1986

04. 01.
약목면 동부출장소가 기산면으로 승격 (1읍 7면)

1987

01. 01.
선산군 장천면 석우동이 가산면으로 편입

1989

01. 01.
가산면 신장리가 선산군으로 편입

2003

07. 01.
북삼면이 북삼읍으로 승격 (2읍 6면)

2006

10. 01.
석적면이 석적읍으로 승격 (3읍 5면)
최종수정일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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